2014 가을 마중 목요활동
2015.02.09 23:00
충분히 좋은 엄마는 엄마됨을 보편적으로 가진 보통엄마이다.
생물학적인 이유로 모성은 아기에게 무한한 신뢰의 얼굴이 될 수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기에게 제공 될 젖을 만들고, 아기를 안전 하게 낳도록 골반이 벌어지고 ,…
자연스런 생물학적 요소가 그냥 나를 엄마로 잘 만들고 있었다. 난 그냥 반응만 해도 되었다.
주어지는 대로 고통 받고 즐거워지고 허탈해하며
그 하나하나의 느낌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아기를 키우도록 준비 된 대순순응하면 되었던 것 이다.
심성적인 수련, 잘 키우기 위한 학습 ?
이런 외적 조건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모성에 앞서지 않는다.
나는 아기가 배고플 때 잘 먹였고, 잠자고 싶어 투정할 때 조심하여 재웠다.
옹아리 하며 나를 대상으로 말 걸어왔을 때 응해 주었고, 많이 놀랐을 때 안아주고 토닥여 주었다.
지금도 나는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귀 열려 있고 , 그 소리를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이를 갖던 그 순간부터 엄마가 아닌 적이 없었다.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엄마이고 아이와 내가 강하게 대화하며 고리 지어진 걸
느끼고 받아주며 살고 있다.
결국 위니컷이 말하는 보통의 엄마라면 실패하지 않을 ‘안아주기가 가능한 그런 엄마’ 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부족한 엄마를 느끼고 아이에게 죄책감을 갖곤 한다.
아이들이 자신 있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주눅들지 않게 말하지 못할 때,
원하는 학교에 성공적으로 진학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슬퍼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주변의 기대에 눌려 자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
하기 싫은 공부를 어거지로 하고 뒤쳐진 성적표를 들고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들어 올 때
온전히 즐겁게 놀이에 빠지지 못하고 쫒기 듯 눈치 보며 게임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독립되고 창조적인 한 개인으로서의 아이와 마주하며 미안하고 죄스러워짐을 왜 느껴야 하는가?
나의 안아주기는 결국 이론적인 것일 뿐 본성에서 올라 온 따뜻하고 풍부한 정서적 지원을 못하고 있음 인가?
나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하지 못하고 살았던가 ?
봄,가을 학기를 거쳐 위니컷 이론수업을 함께 했다.
위니컷은 대상관계의 시작을 안아주는 울타리 즉, 엄마의 모성 돌봄에서 부터 안내한다.